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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세대를 뛰어넘는 따뜻한 울림을 찾아서

by 몽쉘군 2025. 7. 13.

가슴 먹먹한 감동과 함께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입니다. 개봉한 지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지금 다시 보아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 작품은 단순한 영화를 넘어 우리에게 '가족'과 '사랑'의 본질적인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도시의 소음과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말 없는 할머니의 깊은 사랑이 전하는 진솔한 위로와 감동의 순간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집으로 포스터

 

간단한 줄거리

도시에서만 살아온 7살 손자 상우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시골에 사는 외할머니에게 잠시 맡겨집니다. 말도 못 하고 글도 모르는 외할머니와의 생활은 상우에게 불편하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켄터키 프라이드치킨과 전자오락기가 세상의 전부였던 상우는 원시인 같기만 한 할머니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굴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묵묵히 모든 투정과 짜증을 받아주며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할머니의 모습에 상우의 마음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철부지 손자와 말 없는 외할머니의 만남

영화의 시작은 극명한 대비를 통해 두 인물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도시를 누비며, 배터리가 없으면 불안해하는 상우는 현대 문명의 이기에 완벽하게 적응된 아이입니다. 그런 상우에게 외할머니의 집은 그야말로 별세계입니다. 수세식 화장실 대신 냄새나는 재래식 화장실을 써야 하고, 먹고 싶던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대신 알아들을 수 없는 이름의 나물 반찬을 마주해야 합니다. 이 모든 불편함의 중심에는 말을 하지 못하는 외할머니가 있습니다. 상우는 자신의 요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미안하다"는 손짓만 반복하는 할머니를 향해 "벙어리"라고 소리치며 원망을 쏟아냅니다. 이는 단순히 철없는 아이의 투정을 넘어, 서로 다른 세상에 살아온 두 세대 간의 완전한 소통의 부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소통의 단절은 오해를 낳고, 상우의 마음의 문은 더욱 단단히 닫혀버립니다. 영화는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 설정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두 사람이 과연 소통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자아냅니다. 할머니의 세상은 자연의 시간에 맞춰 느리게 흘러가지만, 상우의 시간은 즉각적인 만족과 빠른 변화를 요구하기에 그 간극은 더욱 커 보입니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이 백숙이 되기까지

상우의 마음을 돌린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닭'과 관련된 에피소드입니다.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이 먹고 싶다고 온몸으로 표현하며 떼를 쓰는 상우. 할머니는 손자의 마음을 헤아려주기 위해 비를 맞으며 장에 다녀오지만, 사 온 것은 프라이드치킨이 아닌 살아있는 닭 한 마리였습니다. 할머니가 정성껏 끓여준 닭백숙을 보며 상우는 실망과 분노에 휩싸여 밥상을 뒤엎어 버립니다. 하지만 잠든 사이, 땀을 뻘뻘 흘리며 닭을 삶던 할머니의 고단한 모습과 자신의 투정을 묵묵히 받아주던 모습을 떠올리며 미안함과 후회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이 장면은 영화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던 방식은 아니었을지라도, 그 안에 담긴 할머니의 희생과 사랑의 무게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후 상우는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바늘에 실을 꿰기 힘들어하는 할머니를 위해 침을 묻혀 실을 꿰어주고, 할머니가 아플까 봐 걱정하며 자신의 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물질적이고 즉각적인 만족만을 추구하던 아이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보이지 않는 사랑의 가치를 알아가는 이 과정은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물들입니다.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이라는 현대 소비 사회의 상징이 '닭백숙'이라는 전통적인 사랑의 상징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감동의 이유

'집으로'가 개봉한 지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의 '인생 영화'로 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영화가 보여주는 사랑이 가장 원초적이고 조건 없는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 속 할머니(故 김을분 님)는 전문 배우가 아니었기에 그 어떤 연기보다도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는 관객들에게 꾸며지지 않은 날것의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구부정한 허리, 깊게 팬 주름, 투박한 손짓 하나하나에 손자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또한, 영화는 우리에게 진정한 '집'의 의미를 묻습니다. 상우에게 처음 할머니의 집은 떠나고 싶은 불편한 공간이었지만, 할머니의 사랑을 깨달은 후에는 돌아가고 싶은 따뜻한 안식처가 됩니다. 이는 '집'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물리적인 건축물을 넘어,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품어주는 존재가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영화의 마지막, 버스를 타고 떠나는 상우를 향해 말없이 손짓하던 할머니의 모습과, 다시 만날 때를 위해 할머니가 아는 몇 안 되는 글자인 '아프다', '보고 싶다'를 그림과 함께 남겨두고 떠나는 상우의 모습은 세대를 초월한 교감과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며 긴 여운을 남깁니다. 이것이 바로 '집으로'가 시대를 관통하여 우리 모두의 마음을 울리는 이유일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때로는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가치를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영화 '집으로'는 우리에게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을, 특히 가족의 사랑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삭막한 일상에 지쳐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다면, 오늘 저녁 '집으로'와 함께 마음이 정화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