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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by 몽쉘군 2025. 7. 8.

영화 '건축학개론'은 단순히 스무 살의 풋풋한 사랑을 그린 로맨스 영화를 넘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희미하게 자리 잡은 첫사랑의 기억을 섬세하게 꺼내 보이는 작품입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시절의 순수했던 감정과 설렘은 한 채의 집이 지어지는 과정을 통해 아름답게 복원됩니다. 이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기억의 연결고리이자, 서툴렀기에 더욱 선명하게 남은 우리 청춘의 한 페이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건축학개론 포스터

간단한 줄거리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처음 만난 스무 살의 승민(이제훈)과 서연(수지) 함께 숙제를 하며 서로에게 조금씩 끌리기 시작하지만, 작은 오해로 인해 둘의 관계는 끝이 나고 맙니다. 그렇게 첫사랑의 기억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던 15년 후, 건축가가 된 승민(엄태웅) 앞에 서연(한가인) 이 불쑥 나타나 자신을 위한 집을 지어달라고 의뢰합니다. 그녀를 위한 집을 설계하며, 승민은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과 감정들을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를 설레게 했던 그 시절의 첫사랑

영화 건축학개론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가장 큰 이유는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첫사랑의 감정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재현해 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괜히 퉁명스럽게 굴고, 말 한마디 건네기 위해 수없이 망설였던 기억, 그리고 작은 오해로 인해 엇갈려 버린 안타까운 순간까지. 영화는 승민과 서연의 모습을 통해 서툴렀지만 그래서 더 순수하고 애틋했던 우리 모두의 과거를 소환합니다. 특히 승민이 서연에게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들려주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폰 한쪽을 나눠 끼고 같은 음악을 듣는 그 순간의 설렘과 미묘한 떨림은 관객들에게 자신의 첫사랑을 대입하게 만들며 깊은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이는 단순히 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 CD 플레이어와 삐삐로 대변되는 그 시절을 살아온 세대에게는 아련한 향수를, 그 시대를 겪지 않은 세대에게는 풋풋한 설렘을 안겨주며 세대를 아우르는 사랑의 보편적인 감성을 성공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 우리는 모두 서툴고, 그 서투름이 만들어낸 오해와 아쉬움은 시간이 지나 더욱 선명한 추억으로 남는다는 것을 영화는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공간과 기억, 제주도 집의 상징성

'집'이라는 공간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서연에게 제주도의 낡은 집은 단순히 허물고 새로 지어야 할 건물이 아닙니다. 그곳은 아버지와의 추억이 깃든 소중한 공간이자, 현재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보듬어줄 유일한 안식처입니다. 15년 만에 나타나 승민에게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그녀의 모습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과거의 좋았던 기억과 단절된 자신을 이어달라는 간절한 요청처럼 들립니다. 승민은 서연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집을 설계하고 지어가면서,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어 조립합니다. 햇살이 잘 드는 창을 내고, 서연이 누워 바다를 볼 수 있는 2층을 만드는 과정은 마치 그들의 어긋났던 시간을 다시 꿰어 맞추는 의식과도 같습니다. 결국 완성된 집은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하나의 완성된 기억이 됩니다. 비록 두 사람이 다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그 집은 서연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치유의 공간으로, 승민에게는 첫사랑의 기억을 아름답게 완성하고 마무리하는 공간으로 남으며 깊은 여운을 선사합니다.

 

X세대의 감성을 자극한 OST와 시대적 배경

영화의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90년대의 시대적 배경과 그 시절의 감성을 완벽하게 담아낸 OST입니다. 앞서 언급한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은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곡으로, 첫사랑의 아련함과 그리움을 노래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저릿하게 만듭니다.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순간,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90년대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영화는 음악뿐만 아니라 삐삐, CD 플레이어, 공중전화, 무스 바른 머리 등 그 시대를 상징하는 다양한 소품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현실감을 더합니다. 이러한 소품들은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고, 인물들의 감정을 대변하고 그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합니다. 예를 들어, 엇갈린 마음을 전하지 못해 삐삐 음성 메시지에 애태우는 모습이나,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CD를 선물하는 모습 등은 지금과는 다른 그 시대만의 아날로그적 소통 방식이 얼마나 애틋하고 낭만적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처럼 영화 '건축학개론'은 90년대의 문화적 코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X세대의 향수를 자극하고, 그들의 보편적인 경험을 스크린으로 끌어들여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마무리 하면서

결국 영화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첫사랑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냐고 말이죠. 영화 속 승민과 서연처럼, 대부분의 첫사랑은 완성되지 못한 채 아쉬움으로 남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건축학개론'은 그 미완의 기억조차도 우리 삶의 일부이며, 현재의 우리를 만든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따뜻하게 이야기해 줍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인생 영화'로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저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 영화를 감상하는 데 있어 작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